어느날 스타벅스에서
이상국
나에게는 이제 남아 있는 내가 별로 없다
어느새 어둑한 헛간같이 되어서
산그늘 옛집에 살던 일이나
살이 패도록 외롭지 않으면
어머니를 불러본 지도 오래되었다
저녁내 외양간에 불을 켜놓고
송아지 나올 때를 기다리거나
새벽차를 타고
영을 넘던 일을 생각하면
지금의 나는 거의 새것이다
그동안 많은 것을 보고
그리워하기도 했지만
그 어느 것 하나 내 것이 아닌
나는 저 산천의 아들 혹은
강가에 모래 부려놓고
집으로 가는 물처럼
노래하는 사람
나에게는 지금 내가 아는 내가 별로 없다
바퀴처럼 멀리 와
무엇이 되긴 되었는데
나도 거의 모르는 사람이 되었다
어느 날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마시는데
그 사람이 나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 먼 옛날의 잃어버린 자신을 회고하면서, 읽는 이로 하여금 생각이 깊어지게 하고 있다. 화자는 “어느 날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마시”며 “나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나에게는 지금 내가 아는 내가 별로 없”으니 나는 본래의 나로부터 멀리 떠나온 것이다. 여기 있는 나는 누구이며 진정한 나는 어디에 있을까. 이 시는 자신과의 대화이자 질문이다. 소크라테스가 남긴 “반성하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는 명언이 떠오른다. 이 문장에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자신의 내면에 질문을 던져서 영혼의 완성을 목표로 살아가기를 바랐던 마음이 담겨 있다.
진정한 행복이란 무엇일까. 누구나 살면서 가치 있는 삶을 찾아 혼란을 겪는다. 소크라테스는 재물이나 외모보다 영혼을 얻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우리 삶에서 몸의 건강보다 마음의 건강을 더 중요하게 여겼다. 몸의 쾌락은 일시적이고 영원하지 않다. 행복은 몸의 욕구를 만족시켜 기분이 좋은 상태에 마음이 건강한 상태가 따른다. 인간의 영혼은 인간의 내면성, 즉 ‘정신’이며 시 또한 이런 맥락에서 발현된다면 이상적일 것이다.
우리는 재산이나 권력을 위해 선동과 궤변이 난무하는 시대를 산다. 그런데 돌이켜 보면 “그 어느 것 하나 내 것이 아닌” 제행무상(諸行無常)이며 제법무아(諸法無我)이다. 우주의 모든 사물은 변하며 한 모양으로 머물러 있지 않는다. 흐르는 시간에 따라 구름이 나타났다 흩어지고 종내에는 사라지듯이 생각도 이와 같고 ‘나’라는 실체도 없다. (박수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