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

김병호

밤새 짐승이 울었다

해 질 녘에 다녀간 사슴이라 생각했다

새벽은 검고 울음은 뜨거웠다

당신은 그때부터 있다

눈밭 한가운데서 길을 잃고 서 있는 당신을 보았다

첫눈을 온몸에 새겨 눈물을 가리는, 당신

빈 가지에 별자리를 묶고 싶은, 나

아흐레쯤 굶은 짐승의 배 속 같았다

그 안에서 입술들이 날아든다

울음을 떼어 낸 입술들

내 것도 아니고 당신 것도 아닌

심장이 다 부르트겠다

▶ 첫눈이 내릴 때마다 처음이듯이 사랑도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첫눈과 같다.

그러므로 모든 사랑은 첫사랑이다.

시인은 이 시에서 첫눈 내리는 이미지를 “짐승 울음” 그것도 “사슴”을 연상하여 그린다.

그런데 “눈밭 한가운데서 길을 잃고 서 있는 당신을 보았다”거나

“첫눈을 온몸에 새겨 눈물을 가리는, 당신”이라고 하면서

상대를 향한 안쓰러움을 표현하고 있다.

넓은 의미의 사랑이란 이렇게 대상을 향한 배려와 포용력일 것이다.

“빈 가지에 별자리를 묶고 싶은, 나”는 고결하고 애틋한 심정을 대변한다.

하지만 “아흐레쯤 굶은 짐승의 배 속 같았다”니 몸과 마음의 허기가 동병상련으로 감응한다. (박수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