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입성入城

김종해

정월 대보름날 사흘 지난 1962년 2월 18일께, 나는 고향 부산을 떠났다. 고향 바다와 초장동과 어머니와 사랑하는 여자를 부산 본역本驛에 남겨두고 슬프고 긴 기적 소리와 함께 서울행 밤기차가 움직이자 기차 맨 끝 꼬리칸에서 난간을 붙잡고 나는 통곡하였다. 수중에는 1,450원뿐, 이 가운데 서울행 기차삯이 790원―이제 나는 다시 고향 부산 땅으로 돌아가지 못하리라.

「십계十戒」의 모세처럼 광야의 사막을 혼자서 나는 걸어가야 하리라. 넓고 낯선 저 사막, 닫혀 있는 서울의 어느 집에서 한 모금의 물이라도 얻어 마실 것인가. 먼 사막의 광야를 걸어가는 히브리인 모세가 나에게 와서 밤낮으로 회중전등을 비춰 주었다. 나는 일어서서 사막 위를 걷고 또 걸었다.

— 『서로 사랑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짧다』, 문학세계사, 2023.

김종해 시인 약력 :  《자유문학》 신인상에 당선,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이후, 현대문학상, 한국시협회상 등을 수상. 문학세계사 창립 대표를 역임하였으며 시집 《인간의 악기(樂惡)》(1966),《신의 열쇠》,《왜 아니 오시나요》,《바람 부는 날은 지하철을 타고》 등이 있음. 시선집 《무인도를 위하여》외. 전 한국시인협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