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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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닌 척,

……그런 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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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릿한 미명未明속

광속으로 날아온 저 별,

청자 빛 하늘 바래 손 차일을 한 채

허방을 딛는 무명無明의 춤 사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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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가을

小明 노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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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사용법

노혜봉

나이 수만큼의 표정은 눈길 뒤에 숨었을까

거울 속엔

무덤덤한 그녀의 얼굴이 살고 있다

손댈 수 없는 네 표정을 문질러 보았다

슬픔이 겹겹이 밀리면서 속눈물은 말라갔다

바람결에 거울을 휘젓고 간 그림자,

너는 시든 꽃, 초조한 눈동자에 불안한 입귀

일렁이던 불꽃도 주름 갈피에 꽃향으로 간직했다

잇단음표 향들이 바로 코 앞 어지러운데

곱씹던 말들 기억 너머로 가뭇없이 지워졌다

날 위해 가꾸었던 표정을 네 얼굴 뒤에 묻었다

연두 연두의 여린 잎들이

산목련 꽃잎을 오롯이 흔들었던 호수엔

너한테만 보였던 미소가 햇귀처럼 싱그러운데

얼굴은 알아보지만 전혀 다른 사람으로

착각 한다는 카그라스증후군

어떤 추억도 살아남지 못 했으매

그 옛날 눈 감은, 입술의 접점을

느리고 생생하게, 음표로 베낀 간주곡,

이따금씩 반짝이는 바람결

저 구름호수의 무늬들

보일 듯 말 듯 한 그녀 얼굴, 보일 듯 말 듯.

눈물꽃이 그린 달빛매창梅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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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은 그녀가 태어난 자리 말의 입술입니다.

먹은 외로움이 태어난 그녀의 자리 그을음입니다

달빛매화 그림자는 눈물이 그린 울음꽃 창입니다.

들을 귀가 있나요? 그이에겐, 진짜로

맨 처음 그이를 보았을 때, 새푸른 내 심중에 꽂혀

단박에 짧은 평생이 찰나에 멎은 은애恩愛라는 걸…

꿈인 듯 거울 속에서 달빛 보며 날밤을 새고

그이 만나 은정恩情 깊이 나눈 벼루에 먹을 갑니다

처마 끝 맑은 풍경 소리 잦아들고 별빛은 밝은데

소나무처럼 푸르리라 언약했던 날 언제인가요*

얇은 귀가 다만 하나라도 있나요? 그이에겐,

그이 손에 잡힌 내가 벼루에 갈고 가는 먹이라면

새까맣게 그을은 마음, 붓 밥이 되어 줄 텐데

내가 그이 집 창 앞에 어린 달빛 그림자라면

선뜻 사느랗게 매화꽃 종이거울이 되어 줄 텐데

천리에 외로운 꿈만 그이 집 담옆을 오락가락 하는**

짙푸른 내 영혼을 모조리 도둑질해 간 연인이여!

언제 꿈엔 듯 열흘 꾸어서라도 말미를 내어

둘이둘이 심지 깊은 시를 짓고 화답을 나눌까요

들을 귀, 두 귀는 있나요! 진정 그이에겐,

그의 영혼 갈피 겹겹이 곱게 숨어 사는 지금,

나는 당신이 앉으나 서나 恩愛하는 입술붓,

손가락 끝에 착 달라붙었다 따라 나오는 힘! 저,

말붓, 그이 집 고요한 달빛매창 외로운 꿈이 되겠어요.

*, ** 매창이 쓴 시 인용. 연인은 유희경.

누름돌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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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문사 계곡 은행나무 지나며

여울물에서 건네받은 황토 빛 돌 하나

가만히 누름돌 들여다보니

나룻배 안의 삿갓 쓴 젊은이는

몇 십 년째 덧없이

뱃전에 기댄 채 졸고 있다

할 말 아득해

말없이 돌편지에 담아 전해 주었나

여울에 비친 달빛을 밟으며

징검다리 발자국 누름돌 디디며

두어 시간 말도 없이 돌아가던 길

손바닥만한 돌을 살몃 뒤집어 본다

손자죽 검은 끄름에 희미한 마음心자

만날 날 없어 끝끝내 하지 못한 말

빈 마음 속 주머니에

두 손을 깊숙이 찌른 채

깊은 잠 돌 속의 젊은이는 아득해

표정이 없다 잠잠히,

유리창 안을 들여다보던

그믐반달이 덧없어 한입에 돌을 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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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 색채 예보, 창문엔 연보라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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