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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김성춘 시집『길 위의 피아노』출간
작성일자 2021-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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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춘 시집『길 위의 피아노』출간


김성춘

1942년 부산 출생. 1974년 《심상》 제1회 신인상 등단. 시집 『방어진 시편』, 『물소리 천사』, 『길 위의 피아노』 외. 산문집 『경주에 말을 걸다』. 최계락문학상, 한국가톨릭문학상 등 수상.

 








파초잎 두들기는 빗소리를 듣는 어느 가을 오후입니다. 화자는 빗소리를 들으면서 “오늘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라고 아침 거울을 보면서 떠올렸던 질문을 다시 떠올립니다. 빗소리야 사계절 어느 때고 들을 수 있는 것이지만 빗소리를 들으면서 문득 인생의 마지막 날을 가정하고 생각에 잠기는 이 때가 가을 하고도 어느 오후여야 했던 이유를 음미해봅니다. 그러고 보면 가을은 가을대로 오후는 오후대로 하강의 시간이고 직전의 시간입니다. 한여름과 정오를 정점에 둔다면 둘 다 하강의 시간인 가을과 오후는 만물이 얼어붙는 겨울을 앞둔 계절이자 모든 것이 어두워지기 사위어가는 저녁을 앞둔 시간이기도 합니다. 가을과 오후는 이처럼 무언가의 직전에서 직후를 자연스럽게 떠올려주는 시간이고 계절입니다.

여기서 무언가는 다른 무엇을 대립하더라도 결국에는 ‘죽음’이라는 단어로, 개념으로, 이미지로 귀결됩니다. 아무리 부정하려 해도 저 단어는 비껴갈 수 없는 힘을 거느리고서 우리 삶을 옥죄어옵니다. 심지어 죽어서 천국에 가고 싶은 사람도 죽음은 원치 않는 것 같습니다. 죽음을 원치 않기에 죽음 이후에도 천국에서 영생을 원하는 것이겠지요. 죽음에 대한 이율배반적인 생각이 어디 이뿐이겠습니까. “죽음은 삶이 고안해낸/훌륭한 발명품”이라는 스티브잡스의 발언도 도무지 동거할 수 없는 죽음과 삶을 극적으로 한데 엮어내고자 하는 의지의 표현으로 읽힙니다. 간신히 체득한 깨달음이기도 한 저 표현이 삶과 죽음의 화해 불가능한 사이를 겨우 비집고 나온 외마디 비명처럼 들리는 것은 여전히 삶에 발 묶여 있는 자의 모자란 이해 탓일까요? 하기야 죽음을 깨우쳤다고 해서 죽음이 다 이해되는 것도 더 유예되는 것도 아니기에 그토록 많은 위인이 죽음에 대해 얘기하고 또 얘기한 것이 아닐까요? 화자는 더 얘기를 이어가지 않습니다. “청와 보살”처럼 혼자서 다시 빗소리를 듣는 것으로 말을 마치고 있습니다.

 

-김언(시인), 시집해설 「봄인 듯 가을인 듯 여여如如한 시」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