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서정시의 포근하고도 풋풋한 시집 한 권을 읽었다. 초면의 강세화 시인께서 한 권의 시집을 필자에게 보내오셨다. 좋은 시인들과의 관계의 담은 이렇게 허물어지고 세워지는 군아라는 행복한 마음과 함께 감사의 인삿말을 남기고 지속적으로 시집 감상에 몰입하였다. 참으로 좋았다. 겨울 철 가는 비가 내리고, 공원엔 물안개가 짙은 밤 시간 집중 라이트를 켜 놓고 그 밑에서 강세화 시인의 시집 읽기에 행복해 했다. 어쩌면 이렇게 순수한 영혼의 터치로 서정시를 그려 낼 수 있을까? 꼭 읽는 이의 마음을 스캔하는 듯 평안을 자아내기에 족했다. 다소 피곤하지만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만큼 아름다웠다. 읽으면서 곳곳을 접어 마음을  표시해 둔 시만도 쾌 여러편이나 되었다. 이 시집을 읽으면서 다른 시인들과 공유해야겠다는 시도 있고, 힘 겨워할 때마다 다시 들고 읽고 싶은 시도 많고, 위로의 대화를 나눌 때도 다시 읽어 가이드로 삼아야겠다는 시도 많았다. 그만큼 읽는 이의 마음을 잘 만져 주는 극 서정시의 표본이 깊게 내재해 있는 시집이라고 말하고 싶은 시집이라서 참으로 좋았다.

단 한번도 시인을 만나뵌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렇듯 시를 통해서 사랑하는 마음, 친근감이 몰려온다는 것은 시인이 얼마나 이 시에 공을 들였는가를 가히 짐작할 수 있는 경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를 읽지 않는 사람들은 이러한 행복한 순간의 경우를 경험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이 시집의 감상평을 그리고 느낌을 간단하게 적어 보기로 한다. 먼저 좋은 시들이 많기는 하지만 그 중 한 두 편만을 먼저 소개하기로 한다.

한때 나의 추억은

바다를 건너서 사막을 빠져나왔다.

악몽 같은 항해 끝에

'조니 워커'의 숙취에 풀려난 것은 다행이었다.

얼마나 취해 있었던지

파도 거품이 솜사탕으로 보였다.

학교에서 처음 열린 운동회 때

꼴찌로 달렸던 기억이 남아서

다시는 경주에 나가지 않았다.

지는 것이 싫은 내색도 못 하고

차 시간에 늦어도 일부러 뛰지 않았다.

조바심 나는 성깔을 감추고

느긋한 표정을 지으면서

속으로 바늘을 꽃으면서

바다는 사막이었다.

목구멍이 붓도록 술을 마시고

핏발 선 눈으로 바다와 아침과 해를

굴렁쇠 굴리는 나날이

도시의 뒷골목에서처럼

거기서도 뒷길로 내몰렸다.

꿈을 안고 뛰어든 바다였는데

선상 생활이 모래처럼 삭막하였다.

그렇게 지나온 날이 또한

한때 나의 풍경이 되었다.

-강세화 시인의 시 <사막의 뒷골목>전문

위의 시를 읽으면서 필자의 추억과 지금도 내 삶에 미치는 역사를 반추할 수 있었다. 말을 하지 않아서 그렇지 누구에게나 역기능적 환경의 영향 하나쯤 품고 간신히 살아내는 사람들이 있다. 시인도 그렇고 필자의 경우도 동일한 경험이 있기에 살짝 내 안의 트라우마를 꺼내 보았다가 다시 넣어두기로 한다. 어느새 쪼그라들고 작아져 더 이상 영향력을 미칠 수 없을 것 같은 지난 추억 한 자락을 보면서 씩 웃기만 했다. 이와 같은 경우가 강세화 시인의 위의 시에 드러나 있음을 보면서 순간 내적 치유를 경험하게 되어서 참으로 좋았다. 많은 독자들도 이와 같은 희열을 경험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