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도 시인들이 뽑는 시인상, 김학철, 노혜봉 시인

문학아카데미(대표: 朴堤千)와 계간 『문학과창작』이 제정한 <시인들이 뽑는 시인상> 심사위원회는 2012년도 수상자로 김학철(金學哲), 노혜봉(盧慧峰) 시인을 선정하였다.

한국시인작가협의회와 <문학아카데미 문학상> 운영위원회가 추천, 선정하는 <시인들이 뽑는 시인상> 시인들은 2002년 제정 이래 시류에 상관없이 독자적인 작품의 일가를 이룬 시인 중에서도 인품을 제일의 덕목으로 삼아 누구에게나 존경받는 시인들이다. 이번에 수상하시는 시인 김학철, 노혜봉 시인은 시인으로서의 위의를 지키며 일생 묵묵히 지방에서 시를 써오신 분들이다.

심사위원들은 김학철 시인의 짧은 시에서 말을 아끼고 압축하는 시인으로서의 자세를 보아내면서 “떠나고 돌아옴의/ 끝없는 순환이 아프게 돌아온다”는 순환의 미학이 삶의 본질을 육박한다고 평가한다. 아울러 노혜봉 시인의 산문시들이 사물의 아름다운 순간을 놓치지 않고 포착하는 예리한 관찰력으로 산문시의 형식미나 내용의 완결성을 미학적으로 형상화하고 있음을 주목했다. 심사는 고창수, 강우식, 박제천 시인이 담당했다.

[수상시인 약력]

김학철 : 1943년 서울 출생. 1970년 『시법』 등단. 경희대 국문과 졸업. 시집: 『사향 주머니』 『햇빛 과원에서』 『감정리에 별을 심다』 등. 경희대학교문화상, 한국문학비평가협회상 등 수상. 춘천 성수여자고등학교장 역임. 현재 국제 펜클럽 한국 본부 이사.

노혜봉 : 서울 출생. 1990년 『문학정신』 등단. 시집: 『산화가』 『쇠귀, 저 깊은 골짝』 『봄빛절벽』. 1993년 성균문학상 수상.

상.

        *역대 수상자: 제1회 고창수, 제2회 김여정, 제3회 양채영, 제4회 유경환, 제5회 박현령·고정애, 제6회 김동호·정호정, 제7회 성찬경, 제8회 정대구·이보숙, 제9회 윤강로, 윤문자.

[심사평]

담백한 서정시의 아름다움

“풍요 속의 빈곤”이라는 말을 요즘처럼 실감할 때가 없다. 작금의 한국시단이 그러하다.

우리시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그 많은 시인들이 지금 무슨 노래를 하고 있는가. 나는 알 수가 없다. 새삼 가족 같은 시인들이 옹기종기 모여 시를 노래했던 50, 60년대가 그립다. 그때는 가난했지만 시가 살아 있었다. 적어도 시가 무엇을 노래하고 얘기해야 되는지 알고 있었다. <시인들이 뽑는 시인상>은 그런 염원으로 제정된 상이기도 하다. 사회 일각에서 밀려난 듯한 연령의 시인, 하지만 밀려나지도 사라지지도 않은 떳떳한 시인들에게 주는 상이기 때문이다.

이번에 수상하시는 시인 김학철, 노혜봉 시인이 그러하다. 이 두 분의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비록 시단에의 등단은 좀 늦었지만 시인으로서의 위의를 지키며 일생 묵묵히 지방에서 시를 써오신 분들이다. 적어도 이곳저곳 기웃거리며 눈도장 찍기에 바쁜 시인이 아니라는 점이다.

김학철 시인의 작품 「길을 묻는다」 외 4편은 자유시 중에서도 되도록 짧은 형식으로 되어 있다. 말을 아끼고 압축하는 시인으로서의 자세가 한눈에 띤다. 그러면서도 이 시인의 노래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가 생생히 살아 있다.

시 「길을 묻는다」에서 시인은 우리들 인생이 다름아니라 길에서 길을 묻는 것임을 이야기하면서 그 길이 “떠나고 돌아옴의/ 끝없는 순환이 아프게 돌아온다”라고 읊고 있다. 이처럼 김학철 시인의 수상작들은 순환의 미학을 띠고 있다.

시 「가을 속으로」에서는 모든 소멸해 가는 것들이 다 아름답지 않음을 노래하면서 계절의 순환성을 나타낸다. 특히 “별이 지는 하늘에서/ 누군가의 영혼이 깊은 숨을 토해 내듯이/ 산안개 천천히 내려옵니다”와 같은 서정은 자연 속에 산 깊은 연륜이 우러나온 좋은 구절로 기억될 만하다.

시 「얼굴」은 망각되어져가는 그리운 사람의 얼굴을 찾으려는 기억의 순환성을 그리고 있으며 이런 순환에의 시학이 단순히 순환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시 「순환여행」에서는 “달빛 사이로 찔레꽃 향기”같은 것으로 인식되어 진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향기나 냄새들은 사물에의 본질을 나타내는 것으로서 김학철 시인의 순환의 미학은 삶의 본질까지도 추구하는 단계에 와 있음이 분명하다.

가령 시 「눈뜨는 나무」에서 삶과 죽음의 순환을 노래하면서 “빛을 향해 눈을 여는” 생의 아름다움도 보는 한편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잠자는 나무”의 죽음의 아름다움도 순환의 과정을 통해 보는 견자로서의 모습은 일품이라 할 만하다.

앞의 김학철의 짧은 시에 비해 노혜봉 시인의 수상작들은 산문시로 되어 있다. 근일 삶이 많이 풍요로워지고 편해져서인지 시단에도 산문시를 쓰는 시인들이 많다. 나는 양산되는 산문시들이 시로서의 산문성을 확보하고 있느냐를 이 시점에서 반성해 봐야 된다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노혜봉의 산문시는 형식미나 내용이 완결성을 얻고 있다고 확신한다. 시 「묘법매화경」이 그러하다. 노혜봉은 불가의 ‘묘법연화경’을 원용해 제목으로 삼고 있는데 이 또한 노혜봉이 적어도 시 맛(비트는)을 아는 시인임을 입증하고 있다.

「묘법매화경」은 눈 오는 날 용문사에서 매화꽃을 본 것을 노래한 작품이다. 이 시에서 시적화자, 눈, 절, 매화 등이 동일성을 띠고 있는데 그 과정이 극도로 산문성을 배제하고 빛과 향기로써 변화를 보이면서 군더더기 없이 깨끗이 흐르고 있다. 너무나 황홀하다.

시 「봄빛 절벽 그 아래엔」도 앞의 작품과 마찬가지로 미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봄, 너무 밝아져 캄캄 절벽이기도 한 봄에 피는 진달래꽃의 아름다움을 신라인들의 미소로까지 끌어올리고 있는 작품이다. 나는 노혜봉 시의 아름다움은 이 시인이 각자(覺者)로서의 정신의식이 살아있음에 기인한다고 본다.

그는 사물의 아름다운 순간을 놓치지 않고 포착하는 예리한 관찰력을 가지고 있는 시인이다. 시 「저물녘」 「서천西天으로 가는 길목」 「물水」 등의 작품은 개인의 일상성을 시로 형상화한 것들이다. 이들 작품에서도 그림자, 돌을 통해 자신을 노래하면서도 교언영색(巧言令色)에 현혹되지 않고 인생의 깊이대로 시를 만든 것들이 과연 <시인들이 뽑는 시인상>을 받을 만하다고 믿는다.

두 분 시인의 수상을 거듭 축하하며 앞으로도 젊은 시를 계속 발표하여 우리 시의 위의를 높여주기를 부탁드린다.

심시위원; 고창수, 강우식(글), 박제천

[김학철 시인 수상소감]

떨리는 손으로 꽃을 피워내듯

상을 준다니 그것도 시인들이 뽑은 상을 준다니 고맙기도 하고 또한 너무 반갑다.

이제 천천히 골방으로 숨어버리려 했더니 다시 햇빛 속으로 걸어나와 빛 속에 앉아 있으란다. 눈이 부시겠다.

지난 봄에도 내 조그만 정원에는 새로운 꽃들로 가득했었다. 한 군락의 꽃들이 아름다움을 다투어 피워내고 잎을 버리면 다른 군락의 꽃들이 피어 왕성한 생명을 노래하고 저마다 다른 색깔로 내 눈을 황홀하게 물들였던 것을 나는 기억한다.

그 기억 속의 꽃처럼 나의 시(詩)들이 형형색색으로 피어나길 기다리며 잡초들이 끊임없이 살아나는 밭을 가꾸는 일을 게을리 하질 말아야겠다.

떨리는 손으로 꽃을 피워내듯 시를 키우며 살아야겠다.

[노혜봉 시인 수상소감]

꿈속의 채찍질

할 수 없이 이 세상에 다시 태어나야 한다면 나는 한낱 돌멩이로 태어나고 싶다고 젊은 시절 누군가에게 말한 적이 있었다. 돌멩이가 다시 부서져 먼지 같은 돌가루가 되고 싶다고.

이제서야 비로소 진정한 시인이란 새로운 이름을, 제 앞길에 처음으로 명명해 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진심어린 감사를 올린다. 어여쁘게 보시고 선해 주신 마음에 보답하는 길이란 정신줄을 놓치지 않고, 시인의 전범을 보이는 시를 쓰면서 한결같이 정진하라는 가르치심일 것이다. 그 가르치심을 이제부터 제 심법(心法)으로 삼으리라 다짐을 해본다.

이 순간 할아버지, 외할머니, 지난 해 돌아가신 어머니, 깊은 인연으로 제게 다가오셨던 백순재, 김구용 선생님이 떠오른다. 그분들이내 정신의 뒤란을 가꾸어 주신 은혜에 감복하며, 조각보에 수놓인 꽃잎들이 향내를 품어서 또 다른 내일의 순정한 모습으로 태어나기를 기다리련다.

늘 마음을 나누고 나누어도 모자라는 서로의 울타리, 그 안에 사는 남편과 아들딸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시를 쓰고자, 오늘도 아득한 벼랑 끝에 서서 한낱 돌멩이로 굴러 떨어질 날을 기다리며, 내 발뒤꿈치를 다시 한 번 조심스럽게 들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