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막식이 끝난 뒤
‘한국시인협회’ 가을정기세미나 및 전국시인대회가 수원선경도서관강당에서 개막식을 시작으로 26-27일 이틀 동안 선경도서관, 남창동공방거리, 경인일보호텔 벨류 하이엔드 등에서 열린다.
이번 행사는 한국시인협회가 주최하고 한국시인협회와 경인일보가 주관한 가운데 수원시, 경기문화재단, 수원문화재단이 후원했다.
오전11시부터 시작된 개막식에는 최동호 한국시인협회회장과 김동근 수원시부시장을 비롯하여 전국의 시인 150여명이 참석했다. 문현미 시인의 사회로 시작된 행사는 먼저 국민의례와 애국가제창, 내빈소개, 최동호 회장의 인사말로 이어졌다. 최동호 회장은 "詩가 뭔가 생각하고 나갈 길을 모색해보고자 한다’며 수원방문의해를 맞아 수원에서 전국시인대회를 갖게 됨을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전국 각지의 한국시인협회 회원들을 모시고 가을 세미나와 시낭송, 시화전 등을 개최하도록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신 수원시와 경기문화재단, 수원문화재단, 그리고 장소와 행사에 공동의 주최가 되어주신 경인일보와 참석해주신 여러분께도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김동근 부시장도 환영사를 통해 "우리 수원을 방문해주신 것을 진심으로 환영한다"며, "걷기대회에 참가했다가 이곳까지 걸어서 오는 동안 행궁동 거리를 걷다보니 시와 많이 닮아간다. 우리 수원의 정체성은 정조를 빼놓고는 생각할 수가 없다. 수원은 인문학도시로 거듭나기 위해 많은 힘을 기울이고 있다. 사람이 반갑고,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인문학의 도시로서 정조의 시문학정신을 계승 발전시켜 빛내야 할 것"이라며, 1박2일간의 짧은 만남이지만 편히 즐겁게 지내시다 가실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오세영 시인도 환영사에서 "정조을 빼놓고는 얘기할 수 없다, 조선역사에 정조대왕은 세종대왕과 함께 가장 훌륭한 임금이었다. 특히 정조는 문학을 굉장히 사랑했다. 역사 임금가운데 유일하게 ‘홍재전서’문집을 펴냈다. 규장각의 도서관을 만들고 많은 학자들을 기르고 인문학을 펼쳤다. 정치는 시인의 마음으로 해야 한다. 요즘 세태도 정치인들이 시심이 없기 때문이다. 양심보다 위대한 시는 없다"고 말했다.
전국 시인들이 공방거리로 몰렸다.
시화만장 테이프 커팅
개회식이 끝난 뒤 참석자들은 모두 행궁동 공방거리로 이동하여 시화만장을 돌아보았다. 시화만장은 시화전처럼 회원들의 시를 만장으로 걸어놓은 것이었다. 공방거리에는 마침 올 들어 첫눈이 내리기 시작했고, 시인들의 마음을 달뜨게 해주었다. 한 여류시인은 서울에서 왔다며 수원에는 처음이라고 했다. 일찍 도착하여 화성행궁을 먼저 돌아보았다며, 2백 여 년 전 한 남자를 만났다고 했다. 역시 시인이라 감각이 있는 것 같아 시심을 많이 받았는가 물었더니 그렇단다. 왜? 이제 왔느냐 고 활짝 반기시며 가슴을 설레게 하시더라고 하며 웃어보였다. 처음 만난 사람과도 웃음과 유머가 있고, 풍류가 흐르는 것이 시인들인 것 같았다.
행궁동거리의 가까운 식당 몇 군데서 분산, 점심식사를 하고 오후4시부터는 경인일보호텔연회장에서 학술세미나가 열렸다. 기조강연자로 되어 있는 신경림 시인이 갑작스런 사고로 불참하여, ‘한국시의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의 기조 문을 김종호 충남대 교수가 대신 읽었다.
그는 초등학교 때 우리말이 없었다, 성명까지도 일본식으로 바꾸고 풍습도 일본의 강제에 따라야 했다며 과거를 되짚었다. 그리고 시를 쓰면서 한 번도 역사적 사회적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며. 시가 이데올로기를 전파하기 위해 당면한 문제해결의 메시지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럼에도 한국시는 이 집단 트라우마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고, 이것이 한국시의 특질을 규정짓는 한 조건이 될 것이며, 결국 한국시는 현실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경인일보 호텔 학술대회장
황동규시인은 ‘삶의 시를 향하여’란 주제에서 지난60년 간 곁눈질 않고 시 창작에 정신을 쏟으며 살아왔다고 했다. 그는‘부조리시‘에도 매력이 있다며, 이성의 규제에서 벗어나는 자유와 논리와 쾌감이 있다고 했다. 이런 부조리시의 존재를 부정하고 싶지 않다며, 그러나 30세 된 박성준 시인의 ’벌거숭이 기계의 사랑‘을 놓고 "그럴듯하죠? 재미있는 구절이 많다. 원래 재치를 중시하는 부조리시의 재치가 뛰어난 시인"이라고 했다. 그러나 아무리 읽어봐도 종잡을 수가 없다고 했다.
그는 또 이이체 시인의 ‘몸의 애인’전문을 놓고도 재밌는 표현들로 가득 찼다며, 시가 대체로 길 뿐만 아니라 몇 번을 읽어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어렵게 시를 쓴다고 질책하지만, 형상화의 고통 없이 시를 너무 쉽게 쓴다는 것이다. 그리고 ‘부조리시인’들도 휘황한 부조리를 넘어서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시를 쓴다면 우리 시의 큰 자산이 될 것이라고 했다.
이 밖에도 ‘삶의 시를 향하여’를 놓고 황동규시인과 유성호 평론가의 토론이 있었으며, 오세영시인과 김병호시인이 ‘한국 근현대시와 정치’에 대해, 이승원 평론가와 김종훈 평론가의 ‘한국 근대시의 성격과 한국시의 정체성’을 토론했다. 객석의 질문도 뜨거웠다. 한 질문자는 우리의 서정시가 서구에 잘 전달되지 못한 것 아니냐? 모더니즘시를 어렵게만 보고 배척하기 때문이 아니냐고 물었다. 이에 오세영 시인은 서로를 인정하고 이해의 폭을 넓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열띤 토론이 끝나고 휴식과 저녁식사 뒤 7시부터는 시낭송과 축하공연이 있었다. 유자효 시인의 사회로 정진규 시인이 ‘젖꼭지’ 이근배 시인이 ‘랴잔 마을의 시’를 낭송했으며 이밖에 허영자, 김종해, 신달자, 오세영 시인을 비롯하여 많은 원로시인들이 낭송하는 가운데 그 열기가 뜨거운 저녁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