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집 속의 대부분의 시 제목은 명사형으로 되어 있다. 이는 그가 대상에 붙여진 ‘이름’을 가지고 무언가 집중적인 작업을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름은 오로지 시니피앙일 뿐, 그것들의 시니피에는 무수한 의미로 열려 있다. 김은우는 기표와 기의의 틈새로 들어가 상상력의 둥지를 만든다. 그는 이름을 다른 이름으로 바꾸는 일(은유)보다 이름에 내러티브(narrative)를 부여하는 일에 더 관심이 많다. 그는 이름마다 1인칭에서 3인칭으로 화자를 바꾸어가며 작은 우화(parable)들을 만들어낸다. 전통적인 우화들이 도덕적 메시지의 전달을 위해 고안된 것이라면, 김은우의 우화는 그런 윤리 게임들과는 거리가 멀다. 그의 우화는 마치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처럼 환상과 자유 연상(free association)을 통해 주체와 세계의 풍경을 그려낸다.
- 오민석(문학평론가·단국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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