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하경 시집, 『시온에서 길을 잃다』(한국문연, 2026.08.20.)
시를 살아내는 일
엄하경의 시에는 기교나 수사보다 순결성과 정직함이, 아이 같은 감수성으로 작고 연약한 대상을 만나는 투명한 마음이 살아 있다. 비하하고 조롱하는 말의 폭력이 난무하는 시대를 살면서 만난 엄하경의 언어에는 깊은 슬픔과 토로할 수 없는 상처가 조용히 숨어 있다. 삶이라는 내적 대지를 딛고서 저 환상 같은 이미지에 자아를 접속한 엄하경의 시적 수행은 언제나 현존에 기반한 것이다.
-김효숙(문학평론가)
엄하경 시인은 전업주부-시인이라는 이중 정체성을 겸업이라는 형식으로 구현해 낸다. 그 밖에도 곁의 사람들이 점차 사라져 가는 현상 앞에서 깊어졌을 삶에 대한 인식과, 억압된 것의 귀환이라는 측면에서 다시금 여성의 삶을 바라보며, 다양한 국면에서 동시대인으로서 사회 읽기를 병행한다. 코로나 팬데믹을 지나오는 동안 시대의 “치명적인 우울”을 겪은 일을 전하고, 급진전하는 인공지능 기술 시대를 맞아 만능의 신을 만들어낸 인간의 지위가 인공지능과 전도되는 상상은 과학기술 급변기의 인식을 적절히 담아낸다. 그중 사진과 그림 관람을 통해 시각 예술과 교환하는 감각으로 써낸 2차 텍스트로서 시에서 이전과 달라진 언어 운용으로 전변하는 감각을 자유롭게 발산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줄곧 수행해 온 시 쓰기 고민을 이번 시집에서도 이어가면서 그간의 이중 정체성을 다시금 다져 나간다.
엄하경 시인
본명 엄미경. 2003년 「시사사」로 등단했으며, 시집으로 「내 안의 무늬」가 있다. 2026년 울산문화관광재단 예술창작활동 지원금을 수혜했다. 현재 한국작가회의, 한국시인협회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