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간’이라는 관념을 향하여 집요한 관찰과 사유를 쏘아 올리는 시인은 현재를 중심으로 과거와 미래를 들어올린다. 그 역학적인 힘은 ‘언어’의 발동에서 출발하며, 사물들의 변화를 감지하기도 한다. 먼 과거에 대한 호기심과 현재의 의미에 대한 질문, 그리고 다가올 미래에 대한 탐측을 보여주는 이번 시집은 시간과 인간의 면밀한 관계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광대한 시간과 공간을 흐르게 하는 은하수 같은 시편을 거닐면서 시인은 희망을 놓지 않는다. 붙잡고 있는 이 희망의 모서리를 향해 시간은 다시 끊임없이 생성되며 동시에 파괴된다. 이러한 ‘시간 운동’ 속에서 마주했던 자신의 내면적인 이야기, 돌아올 수 없는 일상을 포착해나가는 시인의 발효를 거친 희망은 읽는 이의 뒤에서 그림자처럼 올 것이다.
◾ 책 속에서정복선의 시에 계속 출몰하는 주제가 있다면 그것은 ‘시간’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 시집은 시간의 묵시록이고 명상록이다. 그의 시간은 먼 전생 혹은 그 이전까지 잇닿아 있으며 그의 시선은 먼 출발지에서 현재에 이르는 시간의 철로에서 떠나지 않는다.
은하(銀河)의 뜰
지난 생에서 그린 새소리가 밀봉되어 있다
전전반측,
이 꿈이 언제 깰지 모르겠고
어머니 수놓으신 베갯모 꽃밭을 건너서 가보자
—「나의 첫 번째 꿈」 전문
그의 시간은 구심(求心)이 아니라 원심(遠心)을 향해 있다. 그의 시간은 먼 외곽으로 확산되고 폭발하는 시간이다. 그의 시간은 ‘지금 여기’가 아니라 “은하(銀河)의 뜰”로 확장되어 있다. 확장된 시간에 대한 그의 탐구는 무의식적(“이 꿈”)이다. 그는 의식/무의식을 넘나들며(“전전반측”) 시간을 탐측한다. 그는 광대한 시간의 바다에 그물을 던진다. 그것은 마치 현상학적 에포케(epoche)처럼 찰나의 접점을 노리는 행위이다. 그는 판단과 가치의 장식을 버린 주체가 되어 시간과 대면한다.
정복선에게 있어서 사물들은 완결된 것이 아니라 무엇 ‘되기(becoming)’의 과정에 있다. 그것은 계속해서 변화하는 크로노토프의 도상(途上)에 있다. 정복선의 시적 주체는 크로노토프의 길 위에서 미끄러지는 사물의 변화를 추적한다. 그것은 먼 과거에 대한 호기심과 현재의 의미에 대한 질문, 그리고 다가올 미래에 대한 탐측을 보여준다.
◾ 시인의 말나는 먼먼 은하계로부터의 방문객인가?
운석에서 온 물과 성분들이 내 몸에 들어 있다면.
오래전, 오방색의 별무리 한가운데에서
별똥별 하나가 지는 소품을 만났고,
인사동에서 표구를 하고 보니 그 별이 증발해버렸다.
“여기 있던 별똥별 어디 갔어요?”
모른다는 대답!?
요즘에야 액자유리 밑에서 그 흔적을 볼 수 있었다.
보일 듯 말 듯 손톱자국 같은 빗금!
머나먼 은하계로 돌아가고 있는 중이다.
◾ 저자 소개정복선
전북 전주에서 태어나 전북대학교와 성신여대 대학원을 졸업했다. 1988년 《시대문학》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여유당시편』 『마음여행』 등 6권과 영한시선집 『Sand Relief』가 있다. 경기문화재단 창작지원금 수혜, 〈한국시문학상〉을 수상했으며, 현재 한국시인협회 회원, 국제PEN한국본부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대향가〉, 〈유유〉 동인.
E-mail:
cwsanin@hanmail.net◾ 목 차시인의 말
제1부
코르시카 장인의 칼 13 마술사 K 14 여우 사냥 15 종소리는 어느 깊이에서 잠자는가 16 백조자리 캠핑 18 우주로부터 시가 쏟아져 내렸다 19 나의 첫 번째 꿈 20 2악장 21 불발탄 화분 22 북카페, 북스피리언스 24 피리 자서전 25 남기고 싶은 서책 26 무언가(無言歌) 27 그물을 던지고 28
제2부
이태준家 31 청자상감모란국화문과형병 32 페사와르 시장의 찻집 34 박물관으로 간 오두막집 35 우포늪 36 북방긴수염고래가 시인에게 38 여름, 참회 39 경전(耕田) 40 감은사지 삼층석탑 42 가야에 가야금이 있었네 43 박경리 문학공원 44 유충의 배 46 피아노의 섬, 백건우 47 부채 속에 숨겨둔 바람 48 전주한옥마을 49 한지 50
-3 ,4부 생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