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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수상한 사과 - 이해존
작성일자 2019-10-28
조회수 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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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사과


이해존


달콤한 것이 오래 멈춰 있어 이상하다 가끔씩 오가는 눈동자는 뒤꿈치를 따라갈 뿐, 사과의 향내가 악취를 가리고도 남다니 이상하다 먼 길을 달렸어도 줄어들지 않는 거리, 나뭇잎이 쌓여간다 바퀴도 모르고 나뭇가지도 모르는 시간, 세상을 이해할 수 없어 통째로 굴러왔다 발목의 먼지를 털어내고 공중의 집으로 숨어든다 지상의 악취가 오르지 못한다 나무껍질에 허벅지가 긁힐 때마다 단단한 근육이 불거진다 나뭇가지 사이로 나무열매가 잡힌다 갈비뼈 같은 천장으로 햇살이 번진다 방 안으로 점점 차오르던 햇살이 부풀어 오른다 터진다 이상하다 나뭇가지가 투명한 허공을 휘젓는다 나무열매가 앞유리에 으깨어진다 차 안으로 풀어진 몸이 보인다 마지막 단내를 풍기며 탐스럽게 썩어간다

-수상한 사과전문


 

이 시에서 사과이미지는 즉물적이며 관념을 구체화하고 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이미지가 세세하게 묘사되고 증가할수록 현실 이미지는 어둡고 불투명해지는 점이다. 또한 일정한 시 공간의 계열을 따라 이미지를 인과적으로 나열하는 것과 다르게 이 시는 사건이나 장면으로 여러 개의 이미지를 세분한 다음에 재조합하고 있다. 그래서 순차적이지 않지만 새롭다. 이때 시인이 읽어내는 이미지는 감정적인 반응이 배제되어 있고 즉물적인 느낌의 이미지들로 이루어진다. 이것은 낯선 감각을 빚으며 또 한편으로는 시인의 개성적인 시선을 드러낸다.

 사과가 수상한 연유를 밝히려고 일견하면 내용상으로 이상하다는 단어가 세 차례 반복될 뿐, 사과가 왜 수상한지 직접적으로 등장하지 않는다. 진술하지 않고 묘사하고 제시함으로써 화자의 느낌에 대한 동의 여부를 독자의 몫으로 돌리고 여지를 두고 있다.

 그렇다면 몇 개의 시어들 통해 재조합을 해 보자. “앞유리”, “” , “멈춰 있어” , “바퀴등의 단어에 주목해 유추해 보면 사과중심으로 읽지 않고 바퀴 달린 를 중심으로 독해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달콤한 것이 오래 멈춰 있어 이상하다라는 첫 진술은 멈춰 있는 것이 사과가 아니라 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사과를 실은 차가 멈춰 있다. 아니 사과가 등장하는 장면을 배경으로 가 정지해 있다.

 여기서 는 왜 정지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그것의 단서는 나무열매가 앞유리에 으깨어진다 차 안으로 풀어진 몸이 보인다라는 진술에서 파악이 가능하다. “먼 길을 달렸어도 줄어들지 않는 거리”, “바퀴도 모르고 나뭇가지도 모르는 시간등은 시간이 흘렀음을 암시적으로 알려준다. 상황이 이러하니 달려야 마땅한 차가 정지해 있는 상태를 가리켜 이상하다라고 표현하는 것은 설득력이 있다.

 나아가 더 깊이 있게 읽으면 이 시에서 정작 이상한 느낌을 만들어내는 것은 자동차사과와 같은 사물이 아니라 냄새를 동반하는 감각들이다. “향내악취” “단내와 썩어가는 이미지들은 서로 이질적인 관계를 만들어내며 나란히 등장하고 있어 전면에 드러나지 않은 이면의 소문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박수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