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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새의 훗날 - 박지웅
작성일자 2020-01-13
조회수 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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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의 훗날

 

박지웅

 

나무가 아름답고 긴 내장을 꺼낸다

제가 뱀인지 모르는 뱀이 제가 나무인지 모르는 나무줄기를 기어오른다

 

몸통으로 숨통을 죈다, 뱀은 긴 구멍이다

제가 새인지 모르는 어린 새는 길고 어두운 실개천을 따라 걷다 부리에서 흰 꽃을 피울 것이다

 

바깥에만 삶이 있는 것은 아니다

제가 새인지 모르는 꽃들이 뱀의 피부에 수놓인 봄날

갈라진 혀끝에서

다시 갈라진 혀를 내미는 나무를 뱀의 어느 날이라 할까

 

새는 뱀을 통과해 꽃이 되고

뱀은 꽃의 힘으로 기어가 나무로 선다

흙속으로 내장을 밀어 넣어

꼼꼼하게 물을 길어 올린 나무는 훗날 어린 새를 키울 것이다

 

그러고 보면 나무는

세상에서 가장 느리게 먹이를 던지는 손이다

 

봄이 오면 뱀은 등에 꽃을 피우고

길고 부드러운 수천 년의 내장을 흘러 다닐 것이다

 

나무가 봄이라는 거대한 연결 관계에 놓여 상호작용을 한다. 3연의 1, “바깥에만 삶이 있는 것은 아니다에서 바깥이란 인간의 세계를 가리키는 통찰이다. 금을 긋는 것으로 인간과 자연은 경계를 이루고 인간은 바깥으로 추방되는 논리가 성립된다. 인간이 사라지자 자연의 세계에서는 놀라운 일들이 발생한다. “제가 뱀인지 모르는 뱀이 제가 나무인지 모르는 나무줄기를 기어오르고, “제가 새인지 모르는 어린 새는 어두운 실개천을 따라 걷다 부리에서 흰 꽃을 피우며, “제가 새인지 모르는 꽃들이 뱀의 피부에 수놓인. 뱀과 나무줄기가, 꽃과 새가 서로를 넘나든다. 뱀이니, 나무니, 새니, 꽃이니 명명은 인간 중심으로 통용되는 기호이기 때문에 자신이 누군지 모르는 것이다. 나무가 흙속으로 내장을 밀어 넣어/ 꼼꼼하게 물을 길어 올리는 것은 훗날 어린 새를 키우기 위한 것이며, “그러고 보면 나무는/ 세상에서 가장 느리게 먹이를 던지는 손이다”. 그러기에 자연은 지구에서 인간보다 더 수십 억 년 전부터 생존해 오는 것이다. (박수빈)